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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해서 더 따뜻한 삶 - 단편소설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를 읽고

anbi1004 2018. 11. 11. 17:54

 

 

   엄마 생신이 다가오기 몇 주 전부터 엄마한테 다녀와야지 벼르고 벼르며 날짜를 꼽았더랬다. 돌아가신 분에게 생신이 무슨 의미일까마는 엄마를 만나러 갈 핑계로 충분했다. 혼자 다녀와야지. 가슴에 담아둔 말 쏟아내고 와야지. 달력을 보며 그렇게 다짐했더랬다. 이렇게 저렇게 일정을 살피며 생신 하루 전인 금요일을 D-day로 정했다. 언땅이 녹기 시작하던 봄에 갔다가 발목에 무리를 주어 1년 가까이 고생한 후로 출발전 준비물이 많아졌다. 등산 스틱에 장갑까지.준비물 리스트를 작성하며 하루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목요일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파른 비탈길, 가을 단풍만으로도 미끄러운터에 비까지 내린다면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괜한 욕심이 될 길이었다. 얼마나 벼른 일인데... 그냥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반나절만 오면 가야지 했더니, 온종일 쏟아부었다. 빗줄기가 적당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더니,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급기야 폭우가 되었다. 오전이라도 개이면 오후에 가야지 했더니, 금요일 오전 내내 가랑비와 먹구름이 버티고 있었다. ‘인생 참 계획대로 안 되는구나.’ 백기를 들고나니 해가 나기 시작했다.

   돌아가신 엄마 뵈러가는 길 하나 틀어졌다고 인생이 어떻고 저떻고 떠들어대는데 주인공 는 신기하다. 무엇하나 평탄한 길이 없건만 푸념도 한숨도 없다. 무엇을 말하든 흥분하는 법이 없다. 지나치게 슬퍼하지도 지나치게 기뻐하지도 않는다. 희로애락은 독자 몫으로 남기는 배려일까?

   어머니 죽음도 언니 죽음도 를 흔들지 못한다. 그래서 자꾸만 얘 정말 괜찮은 걸까살피게 된다. 자꾸 그의 삶이 궁금해지고 나도 모르는 사이 응원하게 된다.

   엄마, 언니, 할아버지, 아빠까지 모두 떠나보내는 '나'를 보며 참 기구한 인생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겪으면서도 어쩜 이리 담담한지... 섣부른 동정도 할 수 없다. 씩씩하게 살아내는 를 모독하는 것만 같아서...

   비극을 비극으로 그리지 않아서 좋다. 불행을 아파하기 보다 흘러가는 삶의 일부로 담담히 받아들이는 주인공이 사랑스럽다'나'의 밝은 에너지가 결국 성공으로 이어지니, 그의 남은 삶에 대한 염려를 접을 수 있어 퍽 안심된다. 슬프다고 주저앉아 울지도, 기쁘다고 기고만장해져 껄껄껄 웃지도 않는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얽매이지 않고 진정 오늘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런 주인공이 기특하다.

  책을 덮으며 윤성희라는 작가가 궁금해졌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보아야 겠다. 읽을 책이 늘어나니 마음이 바빠진다. 이 또한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