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만나는 시간/소설"우리들의행복한시간"

윤수의 블루노트

anbi1004 2006. 2. 15. 18:52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일찌감치 집을 나간 어머니를 대신하여

윤수는 그의 동생 은수에게 형이자 아버지이며, 어머니인 존재로

살아갑니다.
아버지는 날마다 술로 세월을 보냈고, 얼큰하게 술기운이 오르면

어린 형제들을 닥치는대로 폭행하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지독히도 가난한 집안 살림덕에 배를 곯는 일은 너무 당연한 일상이었고, 술에 취한 아버지의 폭행을 피해 그의 곁을 졸졸따라 다니는
동생은 그가 유일하게 보살펴야 할 책임과 연민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억수같은 빗줄기에 비 피할 곳도 없는 교문 앞을 오로지

형이 수업을 끝내고 나오기 만을 기다리며 돌부처 처럼 서있는
가냘픈 동생의 모습은 우산 하나 받쳐줄수 없는 자신의 무기력함을 웅변하는 것 같아 어린 윤수에게 비에 젖은 은수의 모습은 다른

의미의 고문이었을 것 입니다.   억지로 집으로 돌려보내려는 형과 아버지의 폭행이 두려와 차라리 몇시간 비에 흠뻑 젖을 지언정 형의 학교 앞을 떠날 수 없는 동생의 실랑이는 그들 삶의 슬픈 단면을

보여줍니다.
돌아가지 않으면 엄마처럼 도망가 버리겠다는 형의 협박에 원망

섞인 눈망울을 보내던 동생은 그 길로 돌아간 저녁 심한 열병으로 시력을 잃게 됩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 눈먼 아들의 존재는 어떠했을까요?  

윤수가 없는 사이 눈이 먼 아들의 입에 농약을 먹이려던 아버지는 큰 아들 윤수의 등장으로 뜻을 이루지 못 합니다.  

아버지를 피해 동네 어귀 빈집의 헛간에서 밤을 새우고 집으로 돌아왔을 땐 눈 먼 아들에게 먹이려던 농약을 자신의 입에 털어넣고

주검이 되어있는 아버지의 처참한 모습이 남겨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고아원으로 가게 됩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내려와 내 혈관 속을 흘러다니는 피와 폭력과 비명과 거짓말과 반항 그리고 증오를 꺼내어 차근차근 실습이라도 하는 것 같던 날들이었습니다.(71P)"

 

윤수의 고백처럼 고아원에서의 생활은 그가 학교에 간 사이 동생

은수의 밥을 빼앗고 괴롭히는 아이들을 하교후 그가 흠씬 두들겨

주고, 다음날이면 윤수에게 맞은 아이들이 은수를 때리고, 하교후에

또다시 그가 그들을 때리는 폭력과 복수가 반복되는 삶 이었습니다.
그런 비무장지대의 보초병 같던 삶은 어머니의 등장으로 종식되는 듯 보였습니다.
재혼한 어머니의 집에는 윤수형제 보다 서너살 위인 남자 형제 둘이 있었고, 아버지의 술주정과 폭행을 피해 달아났던 어머니는 아버지와 꼭닮은 의붓아버지를 만나 또다시 피멍이 가실 길 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의붓아버지는 아침이면

두루마리를 자전거에 실고 도배를 하러 나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면 의붓형들이 은수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이미 상처 입은 고슴도치 처럼 온몸에 가시가 심어진 윤수가 가만있을리

만무했습니다. 

의붓형들과의 싸움은 어머니의 매질로 이어졌습니다.  은수가 의붓형제들에게 맞아도 윤수형제를 때렸고, 윤수가 그들에게 주먹질을 날려도 윤수형제를 때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의붓아버지가

그들의 짐을 쌌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다시 버림 받았습니다.


다시 버려진 고아원에서 윤수는 생존의 방법으로 소위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합니다.
본드와 폭행과 온갖 나쁜짓으로 물든 십대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 형이 슈퍼에서 그가 원하는 물건을 훔쳐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형제를 따돌리기 시작하면서 그의 유일한

생존 방법이 무너져 내리고 그들은 날마다 그들에게 찢밟히게

됩니다.
결국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 그 형이란 놈을 흠씬 패주고 그길로

은수와 고아원을 나오게 됩니다.

 

도망친 날 밤.   서울의 밤거리.   시장 골목의 쓰레기통에서 허기를 달래보려 쓰레기를 뒤지던 형제는 두려움에 떠는 은수를 위해 학교에 다니지 않은 동생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애국가를 부르며 추위와 두려움을 달래어 봅니다.
그렇게 시작된 서울 뒷골목의 생활에서 소위 깜상 이라는 사람의

관리를 받게 되면서 그들은 배고픔 대신 앵벌이를 선택합니다.
눈이 먼 동생덕에 앵벌이로서 특별 대우를 받던 시절 은수의 생일날 은수가 먹고 싶다던 컵라면을 먹이고픈 은수는 깜상에게 사정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라면은 사줄 지언정 라면 보다 값도 비싸고 양도 적은 컵라면을 사줄리가 만무합니다.
결국 은수를 위해 슈퍼에서 컵라면 박스를 훔치던 윤수는 주인에게 붙잡혀 만져보지도 못한 열상자의 도둑으로 몰려 동생 은수와

공범과 주범으로 소년원에 들어갑니다.


육개월 후 소년원을 나온 형제는 갈 곳이 없습니다.  

그들을 유일하게 잊지 않고 맞아줄 깜상을 찾는 것은 어쩜 너무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그들의 앵벌이 생활이 다시 시작 됩니다.  

훔친 컵라면 상자를 내놓고 사정하는 그를 오히려 열상자 도둑으로 내몰았던 그 슈퍼를 지나치며 그는 수도 없이 복수를 다짐합니다.

그시절 그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는 복수 오직 그 하나 뿐

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은수가 그 좋아하는 컵라면을 사다 줘도 먹지 못 할 만큼 많이 아프던 저녁.   은수가 감기를 옮길까 싶어 깜상의 방에서 생활하던 그때에 깜상 방에 있는 TV에서 흘러나오는 애국가 소리에 아파 누워있던 은수가 입을 엽니다.   형아, 저 노래 부르는 사람

얼굴이 이쁠거야. 그지? 라고.
프로야구 개막식에 초대된 대학가요제 출신의 여가수가 애국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은수가 울기 시작합니다.   윤수에게는 증오와 원망의 대상이 되어버린 어머니가 어린 동생에겐 여전히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것

입니다. 
밉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실은 그 역시 동생 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어머니를 그리워 할 터 였습니다.
상처 받은 짐승에게는 빗방울 하나도 쓰린 아픔이 되어 돌아오는 것일터. 윤수는 동생의 눈물이 너무나 아팠을 것 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울음 소리에서 도망치고 싶었겠죠.   동생을

울지 말라며 발로 차고 흠씬 두들겨 패 주고 그 길로 밖으로 나온

윤수는 거리에서 한때 만난적이 있던 아이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시비를 붙여 흠씬 분풀이를 한 덕분에 며칠을

경찰서에서 보낸 후 깜상과 동생이 있는 그 뒷골목으로 돌아갑니다.
화가 난 깜상은 그들 형제를 내쫓지만, 실은 은수의 몸이 심상치 않았음을 감지한 깜상이 뒷감당이 귀찮아 내린 조치였습니다.
그 밤 서울의 어두운 골목길에서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동생 은수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습니다.

혼자가 된 윤수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하여 교도소를 제 집 드나들듯 드나들며 범죄의 기술과 증오와 보복을 배워나갑니다.
그렇게 하염없이 어둠의 골목길을 헤매이던 그에게 사랑이 찾아

옵니다.  미장원에서 일하던 그녀는 그들 패거리들에게 꽤나 인기가 좋았습니다.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그녀의 선택을 받은 그는 결혼을 하려면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와 함께 떠나 새 생활을 하자는 그녀의 말을 따르기로 합니다.
아내는 미장원에서 윤수는 슈퍼 배달일을 하며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던 그들에게 임신 소식이 전해 집니다.
기뻐 펄쩍펄쩍 뒤는 윤수의 모습이 그려져 책을 읽는 저 조차도

행복했던 순간 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행복은 그렇게 쉽사리

곁을 주지 않습니다.
아내가 배가 아파 병원에 가 보니 자궁외임신이라며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 입니다.
수술비 삼백만원이 너무나도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 이었습니다.
그가 잘 나가던 시절 한탕을 해서 돈을 빌려주었던 친구를 찾아간 윤수는 친구는 만나지 못하고 그 친구의 친한 선배라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선배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제의를 합니다.   딱 한탕만 하자는.  

사랑하는 아내의 목숨이 돈 삼백만원에 달려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돈을 구하지 못하면 그의 유일한 행복 이었던 그의 아내가 그의

아버지 처럼, 그의 동생 처럼 그의 곁을 떠날 판 이었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선배의 제의를 수락하고 의정부의 한 금은방을 털기위해 장소를 보러 전철을 타게 됩니다.
운명이란게 무엇인지..... 이야기에 열중하던 그들이 동대문운동장역에서 잘못 내리면서 예전에 그가 그의 패거리들과 자주 드나들던 술집의 마담을 만나게 되고 그의 어두운 운명의 서곡이 시작됩니다.

예전부터 그에게 흑심을 품고 있던 마담은 그에게 자기 집으로 가 함께 술을 마시자고 제의하고, 가자는 선배의 눈짓에 하는 수 없이 동행한 길.
이문동 그녀의 아파트에서 얇게 비치는 치마로 갈아입은 그녀가

할 말이 있다며 방으로 그를 불러들여서는 노골적으로 유혹하기

시작합니다.
돈 많은 술집 마담과 단둘이 된 윤수는 돈 삼백만원을 꾸기 위해

사정을 하게 됩니다.   자초지종을 듣던 여자는 자기가 아내를 살려 줄테니 대신 그녀를 수술시킨 후 자기와 살자고 제의 합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들을 불러 시간을 끌고 있는 여자를 보자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럴수는 없다며 일어서려는 순간 건너편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옵니다.
술이나 한잔 하러 가자는 눈짓인지 알았던 선배의 눈짓은 그녀의

집을 한탕의 대상물로 선택하지는 눈짓 이었음을 뒤늦은 그 때에야 깨닫는 순간 이었습니다.
선배는 이미 여자의 딸을 강간하고 칼로 찌른 후 였습니다.   아이의 비명 소리에 놀라서 나왔던 여자를 선배가 목졸라 죽입니다.
이왕 일은 벌어졌고, 여자가 남자인 자신을 희롱하던 일이나 돈깨나 있다고 거들먹거리던 일을 생각하니 음탕한 벌레의 죽음에 동정심 따위가 생길리 만무했습니다.
돈과 패물을 훔쳐 달아다려는 순간 죽은 줄 알았던 여자의 딸이

방에서 피를 흘리며 기어나왔고, 그 순간 문을 여는 파출부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렇게 세명의 여자가 살해되었습니다.

각자 돈을 나누어 흩어진 뒤 윤수는 룸살롱으로 갑니다.  

아무리 가슴을 달래고 달래려 한들 그의 손에 뭍은 피의 죄를 덮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겠지요.
두렵고 떨리는 가슴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겝니다.   그렇게 술과 여자에 뭍혀 죄책감과 두려움을 잊고 싶었을 터 였습니다.
그 시간 집으로 돌아간 선배는 자수를 하라는 부인의 설득으로 그

보다 한발 앞서 경찰서를 찾게 되고, 경찰서에 먼저 발을 들여놓은 그는 범행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선배라는 작자가 한 일은 윤수가 한 일로, 윤수가 한 일은 그가 한 일로 말입니다.
졸지에 강간에 살인 주동자로 둔갑한 윤수는 그의 옛친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합니다.   흔쾌히 그의 안식처가 되어 주겠다고 말하던

친구는 잠든 사이 그를 경찰에 신고하고, 경찰과의 추격전에 밀고

들어간 어느 집에서 부엌에 있는 칼로 여자와 아이를 위협하며

마지막으로 사랑하던 여자에게 전화를 합니다.
여자는 그를 신고하고 달아난 그 친구와 함께 였습니다.   그 친구가 수술비를 대서 퇴원을 했으며 미장원에 있던 때부터 그를 흠모하던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말을 전하며 그녀는 그에게

비수를 던집니다.   왜 그런 짓을 저질렀냐고... 자신이 나쁜 사람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지 않냐며.....
인질극 속에 마지막 통화는 그렇게 끝이나고, 그는 다리에 총을

맞고 체포 됩니다.
그는 더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의 유일한 행복이 되어 주었던 사랑마져 그를 죄인이라 손가락질 하며 등을 돌렸습니다.
그의 죄라면 사랑을 지키고자 했던.... 그의 마지막 행복을 하늘에 빼앗길 수 없었던..... 그 마지막 몸부림이 그의 죄명 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세명의 여자를 살해한 천인 공로할 살인범으로 호칭하였습니다.
그렇게 그는 사형수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