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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같은 삶을 견디는 이들을 응원하며 - 유은실 소설<2미터 그리고 48시간>을 읽고

anbi1004 2019. 7. 14. 15:01



   <2미터 그리고 48시간>은 유은실 작가의 최신 작품이다. 주인공이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 사전 정보의 전부였다. 그래서 유은실 작가가 작품 속 주인공과 동일한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동일병을 가지고 있는 소녀의 이야기이자, 작가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인데, 어떻게 그렇게 철저히 작품과 거리 유지가 가능했을지이 놀라웠다.

   주인공 이정음은 '그레이브스병'으로 4년째 투병중이다. 경제적으로 무능했고 나약했던 남편을 견딜 수 없었던 엄마가 이혼을 선택했고, 빚더미 아빠는 양육비 한 푼 보태줄 형편이 아니다. 13평의 임대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정음이네 형편에 이름도 낯선 병은 삶을 더 고단하게 한다. 약물 복용만으로는 고장난 갑상선 호르몬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수 없었고 결국 4년여 만에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받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방사성 요오드 약을 복용후 48시간은 타인과 2미터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유의사항이었다. 13평 임대 아파트에서 2미터 거리는 불가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 특히 가족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정음이는 할머니 집을 떠올린다. 할머니는 골절 사고로 입원 중이었고 아빠는 간호를 위해 병원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비어있는 할머니 집이라면 48시간 큰 불편없이 혼자일 수 있다. 걱정할 엄마를 생각해 정음이는 선가출, 후보고를 선택한다. 그렇게 계획된 48시간의 가출은 정음이에게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한다.

   건강했던 정음이가 진단을 받은 후 달라지는 주변인과의 관계를 보며 마음이 무거웠다. 소설은 많은 사람이 앓고 있지만 병명은 생소한 병을 만나는 순간, 친구라고 착각했던 타인들을 발견해 가는 모습을 억지스럽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나간다. 불쌍하다거나 슬프다는 말 보다는 현실 속 공감에서 오는 묵직함이 컸다.의도와 상관없이 어설픈 충고로 상처주고, 내 아픔이 아니기에 가볍게 생각하는 주변인들을 보며 아직 어리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보태줄 수 없었다.

  "진심으로 충고하는데, 너 그렇게 우울한 얼굴로 늘어져 있으면 옆에 있는 사람이 피곤해. 좀 웃어라. 너보다 더 아파도 잘 웃는 사람 많잖아. - p.30"

  아픈 말을 너무 당당하게 말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무지한 충고가 얼마나 아픈 칼날이 될 수 있는지를 떠올렸다. 말이 칼이 될 때 그 칼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독을 뿜어내는 말이 자신과 타인을 병들게 한다. 무지한 충고 보다는 침묵의 위로가 더 나은 선택임을 기억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가 준 선물은 너무 무겁고 쓸모없었다. 아빠는 예전부터 그랬다. - p.149"

  이 구절에서 많은 생각들을 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르기도 했고, 남편이, 주변 사람들이, 내 자신이 떠오르기도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사랑을 할 때가 있다. 내가 베풀고 싶은 사랑으로 표현하고 그 마음의 부피를 생각하며 스스로 건넨 마음에 만족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상대의 필요를 고려하지 않은, 상대의 마음을 제대로 알 지 못한채 건네는 배려와 사랑이 어쩜 상대를 더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자주 잊는다. 한편으론 건네는 이의 큰 사랑은 보려하지 않고 보여지는 그 무엇인가에만 집중하여 원망하고 투정하지 않았나 싶기도……. 순간, 그렇게 매몰차기만 했던, 무정하기만 했던 나에 대한 반성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다가오기도…….

   아픈 주인공을 지나치게 밝게 미화하지도, 지나치게 어둡게 과장하지도 않는다. 아픈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상을 인공감미 없이 표현한다. 그래서 무심한 짝인 인애에게서 우정을 발견하고, 이기적이라 생각했던 아빠에게서 뜻밖의 두려움 없는 사랑을 찾고, 존재감이 없던 할머니의 사랑을 느껴가는 주인공의 일상을 따라가며 같은 마음으로 감동 받고, 뭉클해지고, 울컥했다.

  작가의 말 말미에 마무리 하며 건넸던 <아픈 몸을 살다> 속 구절은 나와 우리에게 건네는 격려로 다가온다.

 

 "우리가 삶 자체를 귀중히 여기지 못한다면 아픈 사람들이 건강할 때 하고 있을 일의 관점에서만 그들을 볼 것이며,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 하고 있을 일의 관점에서만 그들을 볼 것이다. 그러나 우연 위에 놓인 이 세계에서 삶은 부서지기 쉬운 한 조각의 행운 같은 것이다. 삶은 그 자체로 귀하다.

- 아픈 몸을 살다202쪽"


  부서지기 쉬운 한 조각의 행운으로 살아가는 오늘이 귀하고 귀하다. 그렇기에 그 연약한 생명을 부여잡고 열심히 살아가는 나와 우리에게 응원을 건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