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bi1004 2006. 2. 15. 18:54

공지영 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수없이 들어봤지만, 이렇게 직접 그녀의 소설을 접하기는 처음 입니다.
지나치게 미사어구를 많이 사용하거나, 작가가 외치고자 하는 주제어를 부각 시키기 위해 강한 웅변을 사용하는 소설은 마치 짙은 화장을 한 여인을 연상시켜 좋아하지 않는 것이 저의 취향입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이외수의 소설을 좋아하며, 연애 소설은 선뜻 펼쳐들지 않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 그녀의 소설을 두고,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이유도 여교수와 사형수의 사랑 이라는 간략한 요점 정리에서 느껴지는 연애 소설의 그렇고 그런 신파의 향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오해였는지 깨닫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고백컨데 저는 돈 몇푼에 사람을 팔아 치우는 인신매매단이나 살인범들에게 사형은 너무나 가벼운 형벌 이라는 사형제 유지론자에 서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나의 주인이 아니니까 그런 내가 나를 죽인다면 그게 살인이라는 결론은 그래, 나도 내렸다."는 유정의 고백에서 자신의 목숨 조차 제것으로 소유 할 수 없는 인간이 타인의 죄를 벌한다는 명목으로 사형을 집행한다는 것은 어쩜 살인자를 벌한다는 명목으로 또다른 살인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구심에 휩싸이기 시작했고, 책을 덮는 순간 사형은 죄를 벌하기 위한 징벌이 아니라는 결론과 만나야 했습니다.
이것이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힘 입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사형제 폐지 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강한 웅변을 토해내지 않습니다.
이슬비에 옷깃을 젖시듯 소설을 읽어내려가는 독자의 가슴에 세상에 죽음이 형벌이 되어야만 하는 죄는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합니다.
또한,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우리내 삶의 외로움의 질곡을 이야기 합니다.
강간 이라는 엄청난 고통으로 세상의 사랑을 잃어버린 유정의 삶이 그러했고,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와 그를 두번 버린 어머니에게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아야 했던 윤수의 삶이 그러했으며, 딸의 고통 보다는 세상의 이목과 권력의 힘이 더 중요하다 믿었지만, 결국 삶의 뒤안길에서 외로운 삶을 위로 해 줄 벗하나 얻을 수 없었던 유정의 엄마가 그러했고, 집나간 마누라에 눈먼 아들을 둔 윤수 아버지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상처받고 외로움에 지쳐있는 인생들 속에 어쩜 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누구인가를 외로움의 깊은 늪으로 내어몰고 있지는 않은가 돌이키게 되었습니다.

 

"나는 인생을 즐기고자 신께 모든 것을 원했다. 그러나 신은 모든 것을 즐기게 하시려고 내게 인생을 주셨다.(소설 191P 중)"
항상 무엇인가를 간구했던 저의 삶을 일축하는 말 이었습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모든 것을 즐기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되었고, "세상의 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면 얼마간 불행한 사람과 전적으로 불행한 사람 이렇게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카뮈 식으로 말하자면 행복한 사람이란 없고 다만, 행복에 관하여 마음이 더, 혹은 덜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 뿐인 것이다.(218P 중반부)"는 카뮈 식의 행복론을 빌어 나는 행복을 위해 얼마 만큼 마음을 열고 사는가?   나는 행복에 관하여 너무나 가난한 마음을 담고 있지는 않은가?  수 없는 물음표들을 나열하며 내 삶을, 내 시간을 다시 한번 정리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윤수의 모습을 통해 지금 나의 삶이, 내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 시간 인지를

반증하는 소설이며, 진짜이야기를 해 나가는 유정과 윤수의 시간들이 또 얼마나 행복한 시간 이었나를 이야기 합니다.
"슬픔이 가면만 쓰지 않으면 그 속에는 언제나 어떤 신비스럽고 성스러우며 절실한 것이 있다(67P)"는 소설의 말대로 슬프지만, 또한 행복함을 안겨주는 소설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입니다.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는 모니카 수녀의 말에 아침을 이야기 하던 윤수의 말이 자꾸만 귓가를 멤돌아 아침이면 두려움 없이 하루를 시작 할 수 있는 저의 삶이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연민은 이해 없이 존재하지 않고, 이해는 관심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관심이다. ...(중략)... 그러므로 모른다, 라는 말은 어쩌면 면죄의 말이 아니라, 사랑의 반대말인지도 모른다. (248P 상반부)"는 말을 통해 기꺼이 내 가족을 위해 열린 가슴으로 연민과 이해를, 관심과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마음으로 가슴을 데울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유정과 윤수가 함께 했던 과거의 시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소설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독자들의 삶을 행복한 시간으로 물들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기꺼이 손수건을 흠뻑 적실 수 있는 시간이 행복했고,

소설을 읽는 이틀이 지나고도 몇주가 지나도록 이렇게 이 이야기를 곱씹을 수 있는 시간이 행복했으며, 간략한 소설의 요점 정리로

쉽게 정리 해 버리던 소설의 선입견을 깨는 신선한 파괴감이 있어

행복했습니다.